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
2025년을 맞이하며
1년 주기로 기록하는 개발 회고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23년 회고를 포스팅하고 이것저것 해오던 것들을 마무리하다 보니 벌써 끝자락에 다다른 24년을 마주하고 있었다. 크게 이룬 것 하나 없는데 2024년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쓸쓸하면서도 걱정스럽기도 했다.
간략하게 되돌아보면 24년은 내 기존 역량과 마음가짐을 좀 더 다듬을 수 있었던 해였다. 현재 내 수준을 점검하고 좀 더 발전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여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렇다면 그 활동들이 모두 성공이었나? 하고 묻는다면 반은 실패했고 반은 성공했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실패가 많았던 요인은 아마 인생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갈피를 잘 못 잡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인생의 큰 이벤트 중의 하나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 단계를 겪을 것이다. 나 역시 대학 과정을 모두 마치고 25년에 졸업을 준비하는 취준생 단계 초입에 들어선 사람이다. 처음 겪어보는 단계다 보니 아무래도 이전과 비교해서 살짝 방황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 회고부터는 대학생 입장에서 작성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취준생 입장에서 쓰는 개발 회고가 될 것이다. 내가 했던 여러 활동들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심리와 가치관과 같은 내면적인 이야기도 조금 정리해 볼까 싶다.
다음에는 취준생이 아닌 취업에 성공한 이야기로 찾아오길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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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었던 대외 활동 지원
2. 아쉽지만 행복했던 나의 대학교 마지막 통학
3. IT 행사 참여하기
4. 즉흥적으로 도전한 정보처리기사 시험의 결말
5. 2025 목표
첫 번째 이야기 -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었던 대외 활동 지원
첫 번째 대외활동 도전
24년이 되고 가장 먼저 했던 활동은 대외활동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도전하고자 했던 활동이 Mash-Up 그리고 SOPT 이렇게 두 개였고 매시업이 먼저 모집했었기 때문에 매시업부터 도전했다. 결과는 1차 서류 탈락이었다. 내 수준에서 합격하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인터뷰 기회를 얻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었고 지원해 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마무리했다.
두 번째 대외활동 도전
두 번째 도전은 SOPT였는데 대학 개강 시기에 맞춰 모집이 열려서 학교 다니면서 준비했다. 서류에서 물어보는 질문이 꽤 많아서 며칠간 고민하며 지원서를 작성한 기억이 난다. 이전 기수였던 지인의 조언을 얻어가며 지원서를 작성한 결과, 1차 서류는 합격했다. 발표 당시에 학교에서 교양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수업에 집중 못하고 계속 발표 시간만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발표 시각이 되자마자 서류 합격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기억난다.
2차 면접 준비는 1차 준비보다 더 힘들었다. 장소는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서 좋았지만, 면접 준비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혀서 꽤 고민했다. 그래서 먼저 작성한 지원 서류를 n 회독하면서 예상 질문리스트를 뽑아 답변을 준비했고 내가 작성한 블로그 글과 여태까지 해온 작업물들을 다시 훑으면서 혹여나 나올 수 있는 기술 질문도 대비했다.
뭔가 쎄한 느낌이 든다면…
면접 당일 면접장 출발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집에서 건대까지는 버스로 아무리 늦어도 25분 거리라 현장 도착 15~20분 여유를 두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나섰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히 버스 앱으로 도착 5분 전을 확인하고 맞춰서 집 밖으로 나온 건데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10분을 기다렸는데도 앱으로 확인하니 계속 제자리였다.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급하게 택시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길가를 누비면서 도로를 확인했는데 택시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만 보였던 택시들이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5분에서 10분을 소모한 것 같다. 최후의 방법으로 버스가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정류장으로 옮겨서 가까스로 탑승했는데 이미 초반에 버스 기다리고 택시 잡으려다 놓친 시간이 컸다.
결국 제한 시간을 넘기고 건대에 도착하여 면접에 응시하지 못하고 집으로 복귀했다. 유아 시기부터 지금까지 광진구에 살아서 건대까지 가는 도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무조건 안 늦는다는 확신이 불러온 대참사;;; 입이 10개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알바할 때도 1번도 지각하지 않고 미리 10~30분 전에 도착해서 일할 준비했었던 내가 면접이라는 큰 이벤트에 지각하다니 아직 성숙하지 못함을 많이 깨닫고 갑니다…
집 가는 길에 생각을 해봤다. 왜 내가 있던 정류장 근처에 버스랑 택시 같은 대중교통이 도로에 없었지? 근데 10~15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은 또 버스가 다니네? 혹시 내 쪽 정류장 쪽에 차 사고가 있었나? 별 시뮬레이션을 다 돌렸다. 혹시나 하고 사고가 있었는지 검색을 해봤는데 그런 기사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갑자기 당근 앱의 동네 이야기 페이지가 생각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 봤는데 거기서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점심에 서울 마라톤 행사가 있어서 일정 시간 동안 차량 통제를 하니 참고하라는 동네 주민의 글. 그것을 보자마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알고 보니 내 집 주변이 마라톤 코스여서 당연히 집 앞 정류장에 버스와 택시가 없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이런 변수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왜 여유를 부렸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인생 살면서 이런 이색적인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나. 한 번 실수할 수 있어도 두 번은 고의가 된다. 명심하고 앞으로 면접이 있을 땐 그냥 1~2시간 일찍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서 준비해야겠다.
아무 일도 없었다.
결국 목표했던 두 활동 지원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매시업은 어려울 거라 예상해서 1차 서류 탈락이어도 괜찮았는데 SOPT는 매우 아쉬웠다. 오직 내 잘못으로 면접을 날린 것이기에 다른 느낌으로 아쉽고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이 두 활동 지원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배울 수 있었다.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실패해도 그 속에서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두 번재 이야기 - 아쉽지만 행복했던 나의 대학교 마지막 통학
24년 여름을 끝으로 학점을 다 채웠고 졸업 유예로 진입했다. 1학년 신입이었을 때는 술 마시고 노느라 수업 들으러 가는 길이 너무 무겁고 피곤했는데 마지막 학기는 수업 들으러 가는 길이 왜인지 가볍고 산뜻했다. 뭔가 마지막이라 그런지 이제 학교에 안 와도 된다는 후련함도 있는데 한편으론 아쉬운 감정도 느껴졌다.
신입생이니까
학교생활을 돌이켜 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다. 신입생 때는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컸다. 남들 다 대학 가니까 나도 따라서 대학에 왔을 뿐이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4년제 대학에 왔으니 이제 나도 즐길 권리가 있다는 합리화를 하면서 방탕하게 1학년을 보냈다. 1학년 1학기, 대학에서 처음 확인해 보는 성적은 매우 처참했다. 2.6 학점.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에 2학기는 그래도 조금 공부를 했다. 수업은 열심히 듣고 시험 1~2주 전에 천천히 복습하면서 굳은 머리를 애써 돌려가며 공부하니까 3.4라는 딱 평범한 수준의 성적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1학년 성적은 낭떠러지가 눈앞인 3.0학점으로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군대에 갔다.
늦바람이 무섭다
학교에 신입생으로 있을 때 주변에서 질리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남자는 군대 갔다 오면 열심히 공부하니까 성적 걱정 하지 마라.” 이 소리를 질리도록 들어서 1학년 때 미래의 나에게 책임을 맡기고 그리 방탕하게 논 거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실제로 군대에 가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보니 내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생각을 좀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1학년 때는 관심 가지지 않던 내 전공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특히 내가 군대에 있던 20년도는 개발자 황금기가 시작될 때라 개발에 대한 열정을 더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역하고 복학한 뒤 본격적으로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서 열심히 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구글에서 지원하는 캠퍼스별 개발 동아리인 GDSC에 지원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배운 기술과 협업 경험들이 귀중한 자산이 되어 여러 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대학이란
그렇다면 나에게 대학은 의미가 있었는가?
첫 학기와 마지막 학기를 놓고 둘이 비교해 보면 5년 사이에 스스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느낀다.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아무런 목표도 없었고 내 전공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군대를 전역한 뒤 여러 개발 활동을 접한 뒤로 내 전공을 좋아하게 되었고 전공을 살려 개발자로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는 목표도 세우게 됐다.
그래서 남들이 나에게 대학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인생의 방향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대학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주제는 사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본다. 그건 본인이 만들어 나가는 거지 남이 딱 잘라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에게 대학은 그냥 취업에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성적은 2점대에 시험도 대부분 똑바로 응시하지 않고 노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대학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지금, 다시 내 대학 생활을 들여다보면 전공 학점은 4점대, 성적 장학금도 받아서 부모님에게 스마트 워치도 선물해 드리고 교내 개발 대회에 나가 최우수상도 받아보고 소중한 인연들도 많이 얻었다.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데 6년이 걸렸다. 긴 시간이지만 짧게 느껴진다. 나에게 대학은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유의미했다.
세 번째 이야기 - IT 행사 참여하기
24년 작은 목표 중 하나였던 IT 행사 참여하기를 두 번이나 실행했다. 첫 번째는 Google I/O Android, 두 번째는 그 이후에 열린 DevFest Android였다. 23년은 학교 다니기 바빠서 외부에서 열리는 IT 행사에 참여할 생각을 잘 못했기 때문에 24년에는 최소한 한 번은 꼭 가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두 번이나 참여할 수 있어 매우 좋았다. 현장에서 유명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개발자분들의 기술적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경청하는 많은 안드로이드 개발자로부터 좋은 에너지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안드로이드 개발에 대한 열정을 조금이라도 더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Google I/O와 DevFest 참여로 만족하지만 아쉬운 점을 뽑자면 Android 행사가 아닌 모든 분야를 다루는 대규모 행사를 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인프콘과 우아콘과 같은 규모가 있는 IT 행사에도 지원을 해봤는데 아쉽게도 당첨되지 않았다. 이번 이번 연도에도 또 도전할 건데 이번에는 부디 당첨되면 좋겠다!
네 번째 이야기 - 즉흥적으로 도전한 정보처리기사 시험의 결말
정보처리기사 시험은 사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계획해서 준비하고 도전한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얼떨결에 응시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학교에 한창 재학 중일 때는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다. 자격증 없이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굳이 자격증 아니어도 열심히 하면 가능하지 않겠냐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지금, 개발 쪽과 관련한 환경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내 가치관도 그에 맞춰 변화됐다. 이전에는 학점과 자격증과 같은 어찌 보면 그 사람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측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평가 요소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협업이나 프로젝트 경험, 대회 입상과 같은 한 방의 임팩트가 있는 경험을 쌓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뭔가 기본적인 것을 놓치는 기분이 들어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쌓자는 결론을 냈다.
그래서 정보처리기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주변 전공자들도 개발 관련 자격증 하나라도 더 추가하겠다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내가 뭐라고 건방지게 자격증 하나 없이 취업하려 하는가. 이건 아닌 거 같아서 바로 시험을 준비했다. 처음 공부할 때는 매우 힘들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코딩하는 실시간 실습 방식의 공부에 몸이 익숙해져 있던 탓인지 가만히 앉아서 실물 책을 보는 게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공부하다 잠들뻔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실기 시험 준비 때는 프로그래밍 문제가 절반이라 필기에 비해서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실기 시험은 24년 10월에 응시했는데 결과가 12월에 나와서 정처기를 까먹고 있다가 같이 시험에 응시했던 지인의 연락 덕분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합격 조회를 했다. 이때 지인 전화 아니었으면 합격 발표일인 것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아마 일주일 정도 지나서 “아 맞다! 정처기 결과 나오지 않았나?” 이러면서 뒤늦게 확인했을 것이다. 합격 글자는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몇 번을 봐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글자다.
2024 총정리
무엇이 가장 뿌듯하고 좋았을까?
- 정보처리기사 합격
- IT행사 두 번 참여
- 개인 프로젝트 기획 규모를 좀 더 확장하고 함께할 동료를 구한 것
- Android 스터디를 창설하고 멤버를 모은 것
- 개발 블로그를 꾸준히 관리한 것
무엇이 가장 아쉬웠을까?
- 심리적 방황을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
- 개인 프로젝트를 빨리 시작하지 못한 것
- 도전한 대외활동 지원에 모두 실패한 것
- Android 스터디 인원을 더 구하지 못한 것
마무리 소감
23년과 비교해 보면 23년은 성장에 몰두했던 해였다면 24년은 성장보다 방향성을 잡는 데 열중했던 것 같다. 이제 대학을 마무리하고 취업시장에 뛰어들다 보니 주변에서 들리는 소식 하나하나가 부담감과 걱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져서 마음이 꺾이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심적 관리하는 것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주변에서도 많은 도움과 위로를 줬는데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다시 열정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 연도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 없이 마무리하고 싶다.
2025년 목표
첫 번째는 목표는 본격적인 취업 도전이다. 이제 학교 활동을 마무리했고 졸업만 하면 되는 상황이기에 나에게 맞는 공고가 뜨면 되든 안 되든 저울질하지 않고 그냥 지원해 볼 생각이다. 아직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작성 경험이 매우 부족하여 아마도 1차 목표는 서류합격률을 높이는 것으로 설정할 것 같다. 2차 목표는 면접 기회를 얻어 면접 경험을 쌓고 코딩테스트 합격률을 높이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개인 프로젝트를 상반기 내에 마무리해서 앱스토어에 출시하는 것이다. 사실 이 목표는 작년 회고 글에 24년 목표로 잡았었는데 실제로 기획과 디자인까지는 마무리했다. 하지만 내가 서버 개발자는 아니어서 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있었고 서버만 있으면 정말 좋은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획 규모를 좀 더 키워서 동료로서 프로젝트에 같이 도전할 서버 인원을 모집했다. 그 결과, 스프링을 다루는 대학교 지인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고 1월 중순부터 바로 기획 검토 및 개발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나 기술적인 고민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포스팅할 예정이다.
세 번째 목표는 알고리즘 문제를 매일 푸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1월 초부터 다시 코딩테스트 준비를 위해서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 있다. 그런데 알고리즘 문제를 매일 마주하기가 쉽지 않아 계속할 수 있는 자극제가 필요한데 생각한 것이 티어 올리기와 깃허브에 커밋해서 활동 이력(잔디) 채우기다. 그래서 백준 기준 플래티넘 진입을 목표로 잡고 매일 문제를 풀고 깃허브에 커밋하고 있다. 이것을 매일 해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네 번째 목표는 심리 안정을 잘하는 것이다. 이제 취준생이니까 심리적으로 힘든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정신을 만들기 위해 생활 습관부터 건강하게 수정할 생각이다. 늦게 자는 것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배달 음식 줄이고 건강한 식단으로, 휴식은 확실하게 가질 예정이다. 부디 이것들을 잘 지켜서 앞으로 올 힘들 상황들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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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24년의 회고는 모두 끝이 났다.
2025년에 목표한 것들을 꼭 이루고 뿌듯한 마음으로 26년 회고를 작성할 날을 기대하며 여기서 글을 마치겠다.